Since 1974, Cho Young Jae and CDR

1970년대 우리나라는 산업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빠른 성장과 개발 중심의 사고방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브랜드와 디자인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이 시기에 CDR은 시작되었습니다. CDR은 1974년 설립되었으며, 조영제 박사의 선구자적 정신과 디자인에 대한 사명감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조영제 박사가 처음으로 디자인을 시작한 50~60년대는 디자인 작업이 오로지 장식적인 부분에만 그쳤으며, 디자인에 대한 대중의 무지가 컸습니다. 이에 한계를 느낀 조영제 박사는 디자인의 역할과 가치를 제대로 알리고 정립하기 위하여 교육자로서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교육자의 길에서 더 나아가 실제적으로 디자인의 내재된 가치를 실현하고 탐구하기 위하여 디자인 연구실의 형태로 CDR을 설립하였습니다. 디자인을 ‘동경의 대상’과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조영제 박사의 통찰력과 노력이 CDR의, 그리고 우리나라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CDR was founded in 1974 when Koreans were unfamiliar with the terms, brand and design, due to the rapid industrialization and development during the 1970s. CDR started to follow the spirits of the founder, Cho Young Jae, and a sense of duty for designs. When Cho began his design works in 1950s and 60s, design was only recognized as decorative features and ignorance of designs brought low level of public awareness. To correct perception of design, Cho decided to build his career as an educator. He further founded CDR to explore practical value within design. Cho’s insight and efforts to raise the value of design and make design as communication methods became a history of Korea brand identity and also a history of CDR.

우리나라 최초의 Brand Identity OB맥주 BI

OB맥주 BI는 우리나라 최초의 BI이자 CDR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BI입니다. OB맥주 이전에 우리나라의 상업 디자인은 브랜드 아이덴티티 시스템관점에서 일관되게 개발되기 보다는 단순 도안을 만드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OB맥주 BI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매뉴얼 시스템을 처음으로 도입하였으며, 맥주 라벨, 패키지, 차량, 광고홍보물 등에 일관된 브랜드 아이덴티티 시스템을 구축하였습니다. 그렇게 개발된 OB맥주 BI는 소비자에게 강력한 이미지로 남았으며, 1983년과 1991년 두 차례의 리뉴얼을 통해서 고유한 브랜드 이미지를 이어 나갔습니다.

The very first brand identity in Korea, OB beer

The BI of OB beer is Korea’s the very first BI and the first BI that CDR has developed. Korea’s commercial design before the OB beer project was only a basic level rather than created from a view of brand identity system. OB beer introduced a manual system that can manage brand identity efficiently. Also, it build a consistent brand identity system for labels, packages, vehicle wraps and promotional materials. The BI of OB beer brought strong impression to consumers and it keeps its own brand image by two times of renewal in 1983 and 1991.

‘조영제 디자인 展 : DECOMAS’ CI 개발 붐을 촉진하다.

1976년 3월에 신세계미술관에서 열린 ‘조영제 디자인展: DECOMAS’는 디자인 전문회사로서의 CDR의 변모와 성장을 견인하면서 국내 기업계에 CI 붐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조영제 박사는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CI 개념을 국내 기업인과 일반인에게 이해하기 쉽게 알리고 그 중요성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이 전시회를 기획했습니다.

Cho Young Jae Design Exhibition : DECOMAS Creating a boom for CI development

Cho Young Jae Design Exhibition: DECOMAs, which was held at the Shinsegae Museum in March, 1976, led the boom for creating CI while it also showed CDR’s growths. Cho planned this exhibition to introduce the concept of CI, a rather new term during that time and spread out the importance of CI to both domestic companies and the public.

‘88서울올림픽 포스터 디자인’ 처음으로 우리의 디자인 국제적 무대에 오르다.

1982년부터 1988년까지 조영제 박사는 88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의 디자인전문위원장을 맡아 디자인 전반을 총괄하고 공식 포스터와 스포츠 포스터를 디자인했습니다.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디자인전문위원회가 중심적인 역할을 해나갈 수 있었던 데에는 조영제 박사의 힘이 컸습니다. 조영제 박사는 CDR의 운영 및 성공적인 CI 개발 경험을 통해 아트디렉터로서의 새로운 디자이너 상을 제시하였고 강력한 리더십과 디자인 매니지먼트 역량을 보여주었습니다. 88서울올림픽의 이벤트 및 디자인 콘셉트 설정을 위해 윤호섭과 함께 <88서울올림픽 마스터플랜>을 작성하고 1982년부터 1988년 올림픽 개막 때까지의 연도별 디자인시행계획을 마련하였습니다. 올림픽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적인 엑스포인 대전엑스포의 포스터 디자인과 일본의 유명 디자인 전문 잡지의 표지 아트워크를 진행하는 등, 국제적 무대에서 우리나라의 디자인을 알리는데 앞장섰습니다.

‘The 1988 Seoul Olympic Games poster design’, Our design on a global stage for the first time

Cho Young Jae designed the official poster and sports posters of the Seoul Olympic games as the head of design department of the 1988 Seoul Olympic Organizing Committee. He had contributed much in this part, so the design department could take a central role in the Olympic Organizing Committee. Cho presented not only a new phase of designer as an art director but also strong leadership and management capability based on his own experiences in managing CDR and developing successful CIs . He made with Yun Ho Seop to build 88 Seoul Olympic events and design concept. Moreover, he planned design project annually from 1982 to 1988, right before the opening of the Olympic Games. Cho had raised Korea’s design on international stage, creating Daejeon Expo, the first international expo in Korea and planning cover artwork with famous magazine design firm in Japan.

‘1976년, 한글 탈네모꼴 모듈 제안’ 시대를 읽고 디자인을 이끌다.

1976년 12월에 조영제 박사는 서울미대 학술지인 <조형> 창간호에 ‘한글기계화(타자기)를 위한 구조의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이 연구에서 “한글 타자기에서는 네모꼴 글자를 사용하기 힘들기 때문에 타자기에 적합한 글자꼴을 디자인해야 타자기로도 아름다운 한글을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디자이너로서는 최초로 한글 탈네모꼴 모듈을 제안했습니다. 조영제 박사의 탈네모꼴 연구는 이후 안상수, 석금호, 이상철 등 다양한 디자이너들에 의해 실험과 개발이 이어졌습니다. 또한 기업 CI의 로고타입 개발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 이 글은 강현주의 [한국디자인사 수첩 : 한국의 폴랜드, 조영제를 인터뷰하다]의 내용으로 구성하였습니다.
1976, proposal of non tetragon Hangul module, leading design

Cho Young Jae published a paper called ‘Study of the structure for the Hangul(the Korean alphabet) mechanization(typewriter)’ in the College of Fine Arts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journal FORM-ARCHIVES. He proposed a new letter font that is suitable for typewriter because square letter form was hard to use. To illustrate the beauty of Hangul, he designed a non tetragon module. Cho’s non tetragon research was proceeded with the follow-up studies by An Sang Soo, Seok Gum Ho, Lee Sang Cheol and by a variety of designers. It also had a great influence on the development of the company logotype 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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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hoyoungjae.com